며칠전 Pig-Min의 칼럼 조선일보에 '초등생들 노리는 음란 플래시 게임' 이라는 기사가 나왔습니다.를 보시면, 한국의 게임위가 '플래시 게임'까지 심의하겠다고 나선 사실을 아실 수 있습니다. 글 후반부에 나와 제대로 읽지 못하셨을 수도 있으니, 문제의 기사를 다시 인용해보도록 하죠.

- 전자신문 기사 인용.
이에 따라 현행 △PC·비디오 △모바일 △온라인 게임물 △아케이드의 4개 플랫폼 구분체계는 △PC △콘솔 △포터블(전용게임기·모바일) △기타(IPTV·TV포털·플래시) △아케이드(베팅성게임과 기타게임)의 5개 플랫폼으로 분류체계가 변경된다. 또 그간 별도의 분류체계가 없었던 소용량 플래시게임을 비롯해 IPTV 및 TV포털용 게임물 등이 기타로 구분돼 심의를 받아야 한다.

어쩌면 조선일보의 기사 자체가, 게임위의 이런 움직임 때문에 나오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과연 인디 게임 - 플래시 게임이 쏟아져 나오는 미국의 심의기관 ESRB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조사해보았습니다.


조사 1단계. 미국 인디 게임 제작자들에게 질문.

그동안 Pig-Min에서 다뤄와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미국 등지의 해외에서는 개인이나 작은 팀이 게임 만들어 자신들의 홈페이지에서 판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웹에서 즐기는 플래시 게임은 둘째치고 말이죠. 현재 한국의 게임위가 내세우는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상황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

그래서 미국에서 인디게임 만들고 있는 제작자들은 ESRB 등의 등급제에 대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얼마나 겪어봤는지에 대해 이메일을 보내 답장을 받아보았습니다. 그 중 일부를 발췌해 엮어보도록 하지요.

- [수퍼 재즈 맨(Super Jazz Man)]을 만든 허큘리안 에포트(Herculean Effort)의 그랙 슐래퍼(Greg Schlapfer)

Uh oh, I don't know what the rules are in terms of ESRB ratings in America, sorry. This is something I should look into for the future, though.

에. 미국 ESRB 등급 관련한 법에 대해 알지 못해요. 미래에는 알아봐야 하는 사항입니다만.

잘 모른다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 몰라? 어떻게? 미국처럼 온갖 법이 빡세고 난무하는 국가에서, 아무리 소규모라지만 게임을 제작해 팔기까지 하는 사람이 관련 법규에 대해 아예 모를 수가 있어? 물론 그냥 소규모로 만들어 파니까 다른데서 건드리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만, 잘 알려진 프리웨어를 3개나 만들어온 사람이니 아예 모른다는 것은 좀 놀라운데... 여기서 생각을 좀 돌려볼 필요가 있죠. ESRB와 그 규칙에 대해 알 필요가 없었으니 알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 생각은 이후에 받은 다른 답장들과 맞물려, 꽤 재밌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 [클라우드(Cloud)] & [플로우(flOW)]의 리드 디자이너 제노바 첸(Jenova Chen)

I am not very familiar with the entire downloadable market in US. As far as I know, the downloadable game through console like xbox360 or ps3 needs ESRB rating. But internet browser based homebrew flash game doesn't require ESRB rating.

미국 전체의 다운로드 판매 시장은 잘 모릅니다. 제가 아는 한, XBOX360과 PS3를 통해 판매되는 다운로드 게임은 ESRB 등급이 필요하네요. 하지만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작은 플래시 게임은 ESRB 등급이 필요 없습니다.

이쪽도 전체 시장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학생 때 프리웨어를 2개 만들어 스타가 된 후, 곧바로 PS3 다운로드 마켓으로 가버렸으니까요. 하지만 [플로우]를 PS3 통해 팔아본 경험상, PS3 다운로드 마켓에 들어가려면 ESRB 등급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여기부터 결정적인 얘기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 [샘 앤 맥스(Sam & Max)] 시리즈로 유명한 텔테일 게임즈(Telltale Games)의 웹 마케팅 담당 에밀리 모르간티(Emily Morganti)

As I understand it, getting your game rated by the ESRB is entirely optional, but most retailers won’t carry a game that’s not rated. Also it’s fairly expensive to get the game rated by the ESRB. That’s why independent games published online usually don’t have ratings.

Sam & Max is not rated right now, but Dreamcatcher is submitting it to the ESRB, so the retail product will have a rating on it.

제가 알기로, ESRB 등급을 받는 것은 '옵션'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게임 판매상은 등급없는 게임을 취급하지 않죠. 그리고 ESRB에서 심의 받으려면 무척 비쌉니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배급되는 인디 게임들은 등급을 받지 않지요.

[샘 앤 맥스]는 아직까지 등급을 받지 않았습니다만, 실물 패키지를 판매할 드림캐쳐(Dreamcatcher)에서는 심사를 넣을 것이고, 그래서 실물 패키지에는 등급이 들어갈 겁니다.

...어라? 심의가 '옵션'? 법으로 정해져서 필수가 아니라, 받아도 되고 안받아도 된다? 물론 등급 심사를 받지 않은 게임은 대부분의 상점에서 판매할 수 없다지만, 그래도 '필수' 내지 '강제'가 아니라는 점이 좀 놀라운데요?

그리고 이 분이 좀 더 자세한 얘기를 해줍니다. 비록 짐작이 대부분이지만.

- [아르마딜로 런(Armadillo Run)]의 피터 스톡(Peter Stock).

I don't think that the ESRB rating is required by law, especially not for web-distributed games by small companies or individuals. I think that most/all retails games do submit for a rating - maybe the publishers want this so they don't get sued by angry parents?

I know that the independent games community has established its own voluntary self-rated system, where developers assess their own games:

http://www.tigrs.org/

ESRB 심의가 법으로 정해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히 소규모 회사나 개인이 만들어 웹에서 판매하는 게임은 말이죠. 제 생각으로는 대부분의 판매상들, 그리고 아마 퍼블리셔들이 심의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분노한 부모들에게 고소당하지 않기 위해서일듯 싶은데요?

인디 게임들은 자율적으로 등급 매기는 시스템이 따로 있다고 알고 있어요. 그 주소는 여기입니다.

http://www.tigrs.org/

네 그렇습니다. 인디 게임쪽은 스스로들 모여서 마크 달아주는 단체가 따로 있다는 거죠. 아직 엄청나게 활성화되지는 않았지만, 저게 퍼져나가며 커지면 또 다른 종류의 좋은 예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 분이 말씀해주신 것은 대부분이 '추측'인데, 사실은 위키피디아에 적혀있는 링크도 적어주시고 그 부분 요약도 해주셨습니다. 허나 거기 적힌 내용 중 '심의 비용' 부분이 틀려있기 때문에, 위 인용문에 넣지 않았어요.

일단 미국에서 인디 게임을 만들고 판매하는 사람들은, ESRB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알더라도 '자신들과는 상관없다'는 쪽입니다. 실제로 ESRB의 등급은 '일반 판매상'에 나갈 게임이나 중요할 뿐, 웹에서 알아서들 만들어 배급하는 쪽은 무관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짐작에 불과할 뿐이지만, 이 심의가 필요한 이유는 '아이들에게 게임을 잘못 팔아 부모들에게 고소당하지 않기 위해'라고 하는군요. 미국은 소송이 지나칠정도로 발달되어 있으니, 저런 장치가 마련된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진 ESRB와 크게 관련 없는 이들의 이야기, 즉 제대로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저들이 ESRB 심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점 외의 사실은 알아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ESRB에 대해 조사해볼 필요를 느꼈습니다.


조사 2단계. ESRB FAQ 조사 & 질문.

우선 ESRB가 무엇인지에 대해 FAQ 페이지를 읽어주십시요. 크지만 하나도 안 아름다운 영어 덩어리라 읽기 귀찮으니, 약간만 발췌해 정리해보겠습니다.

- ESRB의 의미 : Entertainment Software Rating Board의 약자
- ESRB의 조직 구조 : 비영리 단체(non-profit), 자체 규제(self-regulatory) 위원회
- ESRB의 강제성 : 심의 받는 것은 자율(voluntary),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의 판매상(retailers)들은 ESRB 등급을 받은 게임만 취급한다.

네. 인디 게임 제작자들에게 들은 얘기와 마찬가지로, ESRB 심의는 자율입니다.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지만, 단 기존의 실물 유통망과 판매상을 통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받아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FAQ 좀 읽어보는 것만으로는 미덥지 않아서, 좀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 ESRB에 메일을 보냈습니다.

- ESRB의 엘리옷 미즈라치(Eliot Mizrachi)

ESRB ratings are voluntary, however virtually all games that are available for sale at retail in the U.S. and Canada carry an ESRB rating.  This is likely due in large part to the fact that most retailers will only sell games that have been rated by ESRB, and the major console manufacturers (Microsoft, Nintendo and Sony) will only publish games for their platforms that have been rated by ESRB. 
 
We rate all types of games - PC, console, downloadable, online, flash, mobile phone, etc.  However, as I said, the ESRB rating system is a voluntary one, and so there are some games, particularly those available online, that are not submitted to us for rating. 

ESRB 심의는 자율입니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의 상점을 통해 판매되는 모든 게임은 ESRB 심의 마크가 있어야 하죠. 대부분의 상점들은 ESRB 심의를 받은 게임만을 판매하고, 마이크로소프트 - 닌텐도 - 소니 같은 콘솔 게임기 제작사들 또한 ESRB 심의를 받은 게임만을 배급합니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게임을 심의합니다. PC, 콘솔, 다운로드 판매, 온라인, 플래시, 모바일 게임, 등등.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ESRB 심의는 자율적입니다. 그래서 ESRB 등급을 받지 않은 게임들도 있고, 특히 온라인에서 보실 수 있는 게임들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여기서 한 번 더 확인한 바와 같이, ESRB의 심의는 '자율'이지 '필수'가 아닙니다. 굳이 법으로 찍어 누르지 않더라도 알아서 잘 돌아가는 것은, 위에서 짐작한바와 같이 '잘못하면 소송 걸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허나 심의가 자율임에도 대부분의 게임들이 거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게 없으면 상점에서 팔 수 없기 때문이겠죠.

... 그런데 심의 받는 비용은 얼마나 들까? 사실 이것도 중요하죠. 위에서 말한바 있는 위키피디아 문서에는 2,000 - 3,000$라고 써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이메일로 또 물었습니다.


- ESRB의 엘리옷 미즈라치(Eliot Mizrachi)

The ESRB is a non-profit organization, and the rate charged to publishers essentially serves to cover the cost of providing the services of the ESRB.  However, to answer your question, there is in fact a reduced submission rate of $800 for games with development costs of less than $250,000.  This serves to accommodate many of the casual games with more modest development budgets. 

$800 fee for development costs under $250k.
$4,000 fee for development costs over $250k.


ESRB는 비영리 단체고, 퍼블리셔에게 받는 비용은 본질적으로 ESRB의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사용됩니다. 답변드리자면, 제작비 250,000$ 이하의 게임은 할인된 800$의 비용만 받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더 적은 금액으로 만들어지는 많은 캐주얼 게임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죠.

제작비 250,000$ 이하 : 800$
제작비 250,000$ 이상 : 4,000$

음... 심의 비용 세군요. 크고 아름답다. 게임위의 심의 비용은 이에 비하면 천사군요. 참고삼아 게임위의 등급 분류 대상 게임 - 등급 분류 예외 게임물 - 심의 비용 표는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게임위가 '플래시 게임'까지 심의하겠다고 나선 사실에 기반해, 그렇다면 과연 정말로 많이 만들어지는 미국의 ESRB는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알기 위해 조사하며 알게 된 사실들을 적은 글입니다.

물론 미국과 한국의 게임 시장 사정은 많이 다릅니다. 미국은 아직도 '실물 상점'이 건재하기에, 심의 받지 않은 게임을 들여놓지 못하게만 하면 많은 부분이 처리되죠. 또한 미국은 한국과 달리 '분노한 부모의 소송'이라는 것이 꽤 두렵기 때문에, 저런 심의 제도를 스스로라도 잘 돌릴 수 밖에 없겠습니다.

그런 것을 모두 감안하더라도, 플래시 게임까지 모두 심의 대상으로 넣겠다고 한 선언은 너무 과한 액션이 아니었나 싶네요. 그게 왜 과한지는 너무 당연한 사실이라 따로 적지 않겠습니다만, 혹시라도 필요하다면 나중에 별도의 글을 덧붙이도록 하죠.


조사가 끝난 후 도착한 정보. 게임랩(Gamelab)의 피터 리(Peter Lee, 이승택)님의 답장.

글을 올린 직후, 게임 랩(Gamelab)의 피터 리(Peter Lee, 이승택)님께서 답장을 주셨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도 추가하도록 하지요.
ESRB는 옵션입니다.

그 자체도 게임 인더스트리가 무슨 안좋은 일있으면 영화나 TV가 마녀 사냥의 제물이 되듯 게임도 그런 대접을 자주 받아서, 미리 눈치 봐서 알아서 만든 등급 제도 입니다.

온라인 게임은 할 필요 없지만, 케주얼 게임도 리테일 가게에서 판매시에는 등급을 거의 붙이고 있습니다. DinerDash도 박스에는 등급이 붙어있습니다.

혹시 관심이 가실까 해서...
현재 뉴욕주에서 ESRB를 정부에서 관리하는 법안을 진행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 후우...

Comments

익명
2007-06-06 16:50:07

비공개 댓글입니다.

익명
2007-06-07 00:29:33

비공개 댓글입니다.

익명
2009-08-10 01:06:30

비공개 댓글입니다.

익명
2010-04-03 15:17:35

비공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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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위'와 'ESRB', '검열'과 '자율', 그 오묘한 평행선에서. - 겜상다반사
2007-06-06 16:47:17

최근 Pig-min에서 '플래시 게임의 심의에 즈음하여 게임위와 ESRB의 특성에 따른 리서치'를 내놓았다. 아무래도 Pig-min의 특성상, 국내의 '게임위'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ESRB'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되지만, 다양한 업계인들의 반응과 ESRB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이해에 좋은 글이므로 한 번씩 봐두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강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ESRB. ESRB의 정부 관리 법안 진행. '강제'와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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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8 23: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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