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예술이 될 수 있는가?'라는 명제는, 잊혀질만하면 한 번씩 얘기되는 게임계의 최고 화두 중 하나입니다. 한국의 커뮤니티에서만 그러는게 아니라, 해외 포럼이나 사이트 등지에서도 자주 나오는 얘기고요. 그래서인지 애초부터 디지털 아트 등의 일환이나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며 만들어진 [플로우(flOW)]나 [배드 밀크(Bad Milk)]등도 있고, 익스페리멘탈(Experimental)한게임 프로젝트만을 모아둔 사이트도 있으며, 심지어 '아트 하고 싶어서 만든 듯한' 슈팅 게임들도 여럿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게임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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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제 답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그림 - 음악 - 영화 - 소설 등의 타 문화분야에서, 이른바 '예술'이라고 불릴만한 작품들은 어떻게 생겨난 걸까요? 당연한 소리지만, 해당 작품들과 그에 대한 평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작품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해 '예술'이라고 정의내리고 불렀다는 것이지요. 너무나 당연한 소리 같지만, 실제로 그렇습니다. 무슨 신전에서 신탁이라도 받아 '올해의 예술상'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평단의 사람들에 의해 정해지거나, 혹은 일부 마니아들의 컬트적인 지지를 받아오다 널리 퍼져 '예술'이란 소리를 듣는 것이 대부분이죠. 심지어 활발히 활동 할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 '재평가'받는 경우도 적다고 할 수 없고.

그렇다면 '게임도 예술이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다른 분야의 문화들처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동안 연구하고 토의하며 정리를 한다면 말이죠. 허나 그러기에는 게임이 타분야의 문화들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는데, 대략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타 문화보다 비교적 역사가 짧다.


일반적인 '게임'을 통틀어 얘기하면 인류의 역사와 맞먹겠지만, '비디오 게임'만 따지면 무척 짧습니다. '실험'이 있던 것까지 따져야 1950-60년대 정도고, 제대로 활성화된 것은 1980년대 이후죠. 깊고 넓은 자료 정리와 연구가 되기에는 아직 짧은 시간이고, 이른바 '게임계의 권위자'가 등장해 '예술 선언'을 하기에도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많은 이들이 전문가 혹은 권위자 반열에 오른다면, 게임도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 지금 게임 만들고 즐기는 분들이 노력하면, 죽기 전까지는 '예술'로 인정받는 모습을 볼지도 몰라요.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2. 다른 문화에 비해 비교적 많이 '상업적'
이거나, 혹은 그렇다고 오해받는다.

'게임은 문화냐 산업이냐?'라는 또 다른 화두도,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 중 하나인데요. 사실은 둘 다 해당되고, 그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문화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중 음악계에서 비틀즈(Beatles)는 '클래식과 맞먹는 예술성'을 가졌다고 평가받는데, 판이 안 팔렸어도 그랬을까요? 아니 그 이전에, 돈도 못 벌면서 계속 음악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물론 '자본의 논리와 무관하게 돌아가는 문화'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지만, 그건 일단 그 문화의 기본 분야 토양이 튼튼할 때 얘기고요. 기본적으로는 '누군가 돈을 벌 수 있어야' 널리 알려지고 많은 이들이 참여하며 활발하게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영화계도 마찬가지. 크고 튼튼한 배급망을 통해 돈 벌고 있어야 비교적 작은 규모의 아트 영화도 제작하고 배급할 수 있는 것인데, 한국의 스크린쿼터 관련 논리에서 많이 보셨을테니 대충이라도 아실거고요. 사실은 철저하게 시스템 속에서 양산품 찍어내는 듯 싶은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들도, 자회사 통해서 아트 비슷한 영화들 배급하고 그럽니다.

다시 말하자면, '상업성이 완전히 배재된 문화 분야는 거의 없다.'는 얘기죠. 물론 위에서도 말했듯 '돈과 무관한 문화'도 있지만, 그 분야에서 누군가 돈벌며 닦아놓은 토양이 없다면 성립 자체부터 힘들거나, 혹은 널리 퍼져나가지 못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테고요.

구구절절히 써놓았지만, 이걸로도 좀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3. 타 분야보다 '기술' 의존도가 높다.

음악이나 영화도 상당히 기술 집약적인 분야지만, '무슨 촬영법 혹은 녹음법을 썼다'가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널리 얘기되지는 않습니다. 일단 작품 자체를 얘기하고 기술은 그 다음이지요. 하지만 게임은, 일반 플레이어들도 '기술'에 대해 얘기를 합니다. 언제나 고생하는 PC 업그레이드는 결국 제작사가 기존보다 발전된 '기술'(혹은 그에 연관된 무엇)을 쓰기 때문이고, 신세대 게임기인 PS3 - XBOX360 - Wii 모두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다는 사실을 주요 포인트로 선전하고 있지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게임은 '문화'보다 '공학'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는 않지요. '기술은 기술'이고, '콘텐츠는 콘텐츠'입니다. '기술'은 표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고,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라는 것이죠. 단지 게임 시장에서 '기술'을 너무 강조해 얘기하고 있을 뿐이고, 실제로 최신 기술과는 무관한 인디 게임들도 어느정도 각광을 받고 있으니, 이 부분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게임을 '공학'이 아닌 '문화'라 얘기하면 해결되는 걸까요? 진짜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4. 타 분야와 다르게 즐기는 이의 '능동적'인 '상호작용(Interactive)'을 필요로 하고, 플레이의 결과는 언제나 다르다.

사실 이게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다른 분야의 문화들과 너무나도 다른 점이죠.

밀레의 [만종] 같은 그림이 있습니다. 보는 사람들이 각자 다른 감상을 가질 수 있겠지만,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그림 자체를 갖고 잘라맞추거나 - 뭔가 다른 색을 덧칠하거나 - 그 위에서 탭댄스를 추지 않지요. 창작자는 그림을 그리고, 감상자는 그저 볼 뿐입니다. 하지만 게임은 완전히 달라요. 제작자가 만든 게임의 규칙 안에서, 플레이어는 무조건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고 플레이의 결과는, 설령 같은 플레이어가 여러번 즐긴다 해도, 언제나 매번 다르지요. 다시 말하자면, '능동적인 참여'라는 기본 조건과 '매번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 게임을 예술로 부르기 힘들게 만든다고 봐도 좋겠습니다.

우선 '능동적인 참여'라는 부분이 다른 분야의 문화들과 엄청나게 다름을 생각해보죠.. 일단 게임과 플레이어가 너무 친숙해집니다. '예술'이라면 뭔가 고고하고 대단해야 한다고 여겨지는데, 내가 그 안에 들어가 능력 닿는한 마음대로 휘저을수 있다? 우습게 보며 깔보지는 않더라도, 높은 곳에 모셔두고 우러러보기는 힘들어지죠. 그래도 관점을 다르게 잡고 마음을 굳히면 될테니 패스. 다음으로 제작자가 의도하지 않는 플레이 방식도 무한정 나와버릴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우주 3종족이 격돌하는 RTS 게임을, 10년째 리그 열면서 갖가지 전법과 방식이 다 등장하고 있는데요. 제작사는 절대 이런 상황을 의도하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영화나 음악에서도 여러가지 해석이나 사용이 가능하지요. 하지만 게임보다는 훨씬 강도가 약함은 물론, 게임은 애초에 '그 안에서 놀라고 만들어진 툴'이니, 저런 식의 플레이가 문화의 특성 자체에 크게 어긋나지도 않습니다. 고로 '원작자의 생각과 너무나 다르게 되니, 그 의도된 바를 예술이라 부를 수 없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 특성을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관점들이 널리 퍼진다면 해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매번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점도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데요. 하다못해 게걸음 우주인들을 격퇴하는 구세대 슈팅게임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s)]를 하더라도, 플레이어는 우주선의 움직임 - 총알 쏘는 타이밍 - 피하는 시점 등에 있어서 매번 새롭고 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스토리 따라가는 어드벤쳐 게임도 마찬가지. 어떻게 이동하고 뭘 먼저 찍냐에 따라, 큰 줄기는 비슷해도 작은 가지는 다른 경험이 되죠. '비슷한듯 싶어도 언제나 다른 경험'을 하게 만든다는 얘기인데, 사실 이 부분은 게임의 중요한 장점 중 하나입니다만, '예술' 등의 평가를 하려들면 걸림돌이 될 수도 있죠. 왜? 하나의 게임을 즐길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때에 따라 그 감상과 즐김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니까. 매 사람이 매번 다른 경험을 하게 되니, 그에 대해 '예술'에 관련된 논의나 연구를 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요소에 대해서는, '게임이라는 영역 안에서 예술이라는 또 다른 정의'를 내리면 되겠죠.

정리하자면 게임은 '플레이어와의 상호작용'과 '언제나 다른 결과'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그렇기에 다른 분야의 문화들에서 불리는 '예술'이라는 정의를 내리기 힘들지만, '게임만의 또 다른 예술적 정의'를 내리게 되면 가능하리라 봅니다.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보죠.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있는가?'는 업계의 주요 화두 중 하나인데, 국내외를 불문하고 자주 얘기되고 논의되는 중요한 문장입니다. 그런데 기존 문화에서 사용하던 '예술'의 정의를 적용하기에는, '게임'만이 지닌 특성이 너무 강해요. 그렇다면? '게임계 내부에서 장기간동안 연구와 논의를 거친 후, 게임의 특성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한 예술이라는 것의 관점'이 나오면 되리라 봅니다. 실제로 지금도, 어느 정도는 이런 작업들이 진행중인 것 같고요.

그렇게 많은 이들의 노력과 연구가 모이면, 미래에는 저런 화두의 논의 자체도 불필요한 때가 오긴 할겁니다.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그때까지 우리가 게임을 하고 있을지 아닐지 알 수 없다는 정도겠죠.

Comments

익명
2007-04-29 10:58:55

비공개 댓글입니다.

익명
2007-04-30 10:08:57

비공개 댓글입니다.

익명
2007-04-30 11:15:03

비공개 댓글입니다.

익명
2007-05-04 00:52:41

비공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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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비평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 - Game Week
2007-04-30 11:13:11

오래전에 쓰다만 post가 있길래 연결해서 그동안의 고민을 더 추가해봅니다. 게임이 예술 장르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국내에서는 이제 겨우 게임과 게임 문화나 산업에 대해 이론적으로 진지하게 고려할만한 시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일본이나 미국, 유럽 쪽에서는 PC 게임과 비디오 게임의 역사가 오래되고 또 산업적으로도 크게 활발했던 만큼 게임 제작 뿐만 아니라 게임 비평과 문화에 대한 이론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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