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자고 일어났더니, 험블 오리진 번들이 시작되어 트위터가 '혼돈'으로 가득하더군요.

https://twitter.com/Ritgun/statuses/367708861769084928
https://twitter.com/notch/statuses/367709902002978816
https://twitter.com/Ritgun/statuses/367710165945962496

(더 많은 혼돈은 이 글 아래쪽에.)

@ritgun이나 @notch나 혼란스러울만 합니다. 갑자기 EA가 험블 번들과 일을 시작했고, 오리진 키는 물론 스팀 키까지 제공했으며, 심지어 어마어마하게 팔려나가기까지 했습니다.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에서 789,800개 판매 / 3,746,060.40$ 모금 되었습니다. 아직 시작 24시간도 안 되었는데 이렇게 많이 팔렸으니, 분명히 험블 번들 사상 판매량 / 모금액 1위를 차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가장 많은 갯수가 팔렸던 행사는 2012/11/29부터 시작한 험블 THQ 번들로써, 885,370개 판매 / 5,090,000$ 이상 모금되었다. 가장 많은 돈을 모금한 행사는 2012/05/31부터 시작한 험블 번들 V로써, 599,033개 판매 / 5,100,000$ 이상 모금되었다.

게다가 이 행사는, EA가 한 푼도 가져가지 않습니다. 개발사가 가져가는 몫이 아예 책정되어있지 않고, 5군데나 되는 자선단체에 기부하면서 / 행사 주최측에게 험블 팁을 주게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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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도대체 EA는 이걸 왜 한걸까요?


1. 오리진의 사용자 확장 & 이미지 개선.

오리진을 써보고 불만 가진 사람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오리진으로 게임을 실행해본 적이 전혀 없는 사람조차 '오리진은 나쁘다'는 선입견을 갖게 되는 예가 많고, 그렇기 때문에 아예 EA 게임은 안 사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험블 오리진 번들에서 구입한 사람 중 상당수가, 최소한 오리진에 게임을 등록은 해보겠죠. 순간적이나마 오리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대폭 늘어날 겁니다. 그리고 써본 사람 중 일정 비율은, 오리진도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2. EA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홍보 수단.

EA는 최근 몇 년간 여러 삽질로 수많은 욕을 먹어왔습니다. 2013년만 해도 [데드 스페이스 3(Dead Space 3)]의 '캐시 판매'와 [심시티(Simcity)]의 '인터넷 강제 연결' 때문에 어마어마한 욕을 먹었죠. 최근에는 모바일이지만, [플랜츠 vs 좀비즈 2(Plants vs Zombies)]의 F2P 방식도 약간(!) 안 좋은 소리를 듣긴 했습니다.

제 아무리 대단한 기업이라도, 이렇게 다양한 욕을 줄기차게 먹으면 문제가 생기죠. 그래서 분위기 전환을 위해, EA 회사 자체는 한푼도 가져오지 않는 과격한(?) 방식의 번들 행사를 진행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상 게임을 줘버리면서 '기대 수익'이 줄어드는 거지, '필수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게다가 험블 오리진 번들에서 구입할 고객 중 대부분은, 오리진에서 절대 구입할 일이 없었을 사람일 수 있으니까요. 그들을 '잠재 고객'이 아닌 '그냥 네티즌'으로 여긴다면, '기대 수익을 놓친 손실'이 아니라 '홍보 비용을 아낀 절약'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완전 공짜는 아니고, 오리진 운영비용 - 행사 진행에 관련된 인건비 등이 지출되긴 했겠지만, 광고비를 지불하는 방식보다는 훨씬 저렴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험블 오리진 번들 행사의 홍보 효과는 어마어마한 대성공이라고 봅니다. 한국의 네이버 뉴스에서 '험블 오리진'으로 검색하면 현재까지 52건의 기사가 나오는데, 게임과 전혀 무관한 매체들에서도 다루고 있을 지경입니다. 한국의 매체들도 이렇게 많이 다룬다면, 미국 유럽 등의 매체에서는 훨씬 많이 다루고 있을 겁니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게이머들이 이 행사에 대해 인지하며 얘기를 주고받는 정도를 훨씬 넘어 어마어마하게 알려졌다고 봅니다. 단기간 판매량이 매우 높다는 것도 그 반증이고요.

단 이건 '험블 오리진 번들' 홍보의 대성공입니다. '오리진'까지는 어느정도 올라갈거 같지만, EA도 그 수혜를 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3. EA의 스팀에 대한 부드러운 화해 (혹은 굴복) 선언.

EA는 2011/06/03에 오리진을 시작한 후, 스팀에 집요하고도 이상한 대립각을 세워왔습니다. 꽤 집요한 공방을 펼치려 시도했지만, 매우 이상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EA는 스팀에 [드래곤 에이지] 1편은 넣었지만 2편은 안 줬고, [배틀필드] - [매스 이펙트] - [데드 스페이스] - [크라이시스] 시리즈는 2편까지만 주고 3편은 넣지 않았습니다. 대략 2012년도 이후 신작은 스팀에 넣지 않았다고 보시면 됩니다.예외적으로 2012/03에 배급(!)한 인디 게임 [와프(Warp)]는 스팀에도 출시.

물론 EA가 스팀에 대립각을 세웠으니, 신작을 안 주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리즈의 최신판을 스팀에 주지 않은 것들 상당수가, 게임 자체 혹은 비지니스적 문제로 별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존 고객을 오리진으로 유도하는 것이 아닌, 그냥 구매자가 더 이상 사지 않는 단절을 불러왔을 가능성이 꽤 있습니다. 게다가 구매자 대부분은 시리즈 전체를 한곳의 라이브러리에 정리하고 싶을 욕구가 강할텐데, 순전히 비지니스적 이유로 못하게 막은거라, 그리 좋은 느낌을 주지는 못했을걸로 보입니다.물론 이런 게임 상당수에 '오리진 키'를 제공하기도 했는데... 스팀에서 구입한 사람이 굳이 오리진에도 등록한 후 거기서 즐길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아예 구작을 스팀 리스트에서 빼버리며 신규 구매를 막아버리는 것도 방법이었을텐데여러 이유로 스팀에서 사라진 게임 은근히 많다. 피터 몰리뉴가 참여한 [더 무비즈(The Movies)]가 좋은 예다. 물론 기존 구매자는 라이브러리에 여전히 등록되어, 다운받고 즐기는데 제약이 없다. 새로 구입만 못 할 뿐이다., 구작들은 여전히 스팀에 있는데다 심지어 스팀 세일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2013/07 스팀 여름 세일 직전에 [니드 포 스피드] 시리즈의 세일을 하며 스팀 메인에 등장했고, [심즈 3]도 스팀 여름 세일에서 50%까지 할인하며 메인을 차지했다. 게다가 신작은 주지 않지만 [심즈 3]의 DLC는 여전히 스팀에 넣고 있습니다.

EA는 오리진을 시작했으니까 밸브의 스팀에 대립각을 세울만도 한데, 보시다시피 좀 어설펐습니다. 그러면서 썸머 세일이나 위크앤드 세일도 참여하고... EA가 스팀 세일에 참여한 이유는 딱 하나, 그렇게 하면 팔려서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이상하게 세운 대립각도 있으니, 뭘 해도 어정쩡했을 겁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 험블 오리진 번들 행사를 하며 오리진 키와 스팀 키를 같이 주는 이유 중 하나가 이걸지도 모르겠습니다. "EA의 스팀에 대한 부드러운 화해 (혹은 굴복)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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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상되는 결과는 대략 이렇습니다.

1. 더 많은 잠재 고객들이 오리진에 대해 학을 떼게 됨.

험블 오리진 번들은 어마어마하게 많이 팔렸습니다. 그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은 오리진 키가 동시에 퍼졌고, 엄청나게 많은 게이머들이 거의 동시에 오리진에 접속해 키를 등록하려 했습니다.

결과는? 오리진 키 등록 시스템이 뻑났습니다. 저도 아까 험블 오리진 번들을 사자마자 웹에서 등록 시도했는데 잘 되지 않았고, 그래서 클라이언트까지 깔아 등록 시도했는데 여전히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알고보니 전세계 공통으로 잘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수많은 동접자가 갑작스럽게 발생할 가능성, 어느정도까지 산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건 뻑났습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스팀의 키 등록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잘 되었습니다.

<업데이트 2013/08/16 09:00>
험블 오리진 번들 2일째인 현재, 오리진 등록은 정상적으로 됩니다. 단 [심즈 3]만은 별도 리딤 창을 통해 등록해야 하는... 얘네 진짜 왜 이럴까;


저처럼 새롭게 오리진을 써볼까 고민하던 사람이라면, 아마 비슷하게 생각할 겁니다. "역시 오리진의 명성은 진짜였어! 그냥 스팀만 써야지!"


2. "EA는 역시 이상한데였다."라는 생각.

이번 험블 오리진 번들, 리스트가 아주 미묘하게 이상합니다. 괜찮아 보이면서도 이상합니다.
* 1$ 이상
Dead Space <Origin, Steam>
Burnout Paradise the Ultimate Box <Origin, Steam>
Crysis 2 Maximum Edition <Origin, Steam>
Mirror's Edge <Origin, Steam>
Dead Space 3 <Origin>
Medal of Honor <Origin, Steam>

* 평균가 이상
Battlefield 3 <Origin, Soundtrack>
The Sims 3 Starter Pack <Origin, Soundtrack>

우선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는 1편과 3편밖에 없습니다. 아니 왜 2편은 없는거지? 당연히 누구나 궁금해할겁니다.

2편을 2주차 보너스로 줄 수도 있지만, 애시당초 그럴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냥 1편과 2편 1$ 이상에 넣고, 3편만 평균가 이상으로 놓았어도 됩니다. 어차피 3편은 2013/02에 발매되어 반 년 된 비교적 신작이기 때문에, 평균가 이상으로 놓는다고 이상할게 없습니다! 오히려 평균가 이상에 있는 [배틀필드 3]가 2011/10 발매로써 훨씬 구작이고요!

물론 [배틀필드 3]는 여러 DLC를 팔기 때문에, 본편만 제공 후 DLC 구입 유도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멀티플레이'가 강조된 게임이라, 고객들이 DLC를 구입할 확률이 좀 더 높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럴거면, 굳이 왜 [배틀필드 3]를 평균가 이상으로 놓았을까요?

게다가 평균가 이상 게임인 [배틀필드 3]와 [심즈 3]만 사운드트랙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게임은 사운드트랙을 낸 적이 없는 걸까요? [미러즈 엣지]도 사운드트랙 판매 중이고,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도 판매중입니다. 아예 사운드트랙 자체가 없다면 모르겠는데, 멀쩡히 판매되고 있는 것들을 험블 번들에는 넣지 않았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거 제공 가능한 사운드트랙은 다 줄 것이지, 왜 평균가 이상 게임 2개만 제공하는 걸까요? 그것도 평균가 이상 지불자가 아닌, 1$ 이상 구매자 모두에게 주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이상하게 꼬아둔걸까요?

<업데이트 2013/08/16 08:34>
([미러즈 엣지]와 [데드 스페이스]를 오리진에 등록하면, 오리진 계정에 사운드트랙이 추가된다고 합니다.)


이런 식이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고 구매까지 하게 된 이 번들 행사, 뭔가 좀 아귀가 맞는 느낌이 계속 듭니다. 그냥 구입하고 만족해버리는 것을 넘어,  "굳이 저걸 왜 저랬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 되겠죠. 아마 그 생각의 끝은 이게 아닐까 싶습니다. "EA는 역시 이상한데였다."




Comments

익명
2013-08-16 01:54:24

비공개 댓글입니다.

익명
2013-08-16 01:42:19

비공개 댓글입니다.

익명
2013-08-16 10:32:58

비공개 댓글입니다.

익명
2013-08-16 21:50:18

비공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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